리뷰 : Nikkor-N 5cm f/1.1 – 박상인

미명(未明)하의 적을 찾기 위한 노력

1950~1960년대는 전후 독일과 일본을 중심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 광학용 렌즈 개발사의 기록을 갱신하는 렌즈들이 쏟아져나오며 각축전을 벌인 시기이다. 누가 더 빠르고 넓은 화각의 렌즈를 만들어내는가에 세상 의이목이집중된가운데상용렌즈로써가장먼저f/1.2의벽을허문메 이커는 일본의 제국광학공업주식회사(Teikoku Kogaku)였다.

1943년 일본 해군에 의해 황혼이나 새벽녘의 항공기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데 사용하기 위한 고속의 대구경 렌즈를 컨셉으로 개발이 시작된 제국광학의 Zunow 5cm f/1.1은 십여 년에 이르는 개발기간을 거쳐 1953년 상용렌즈로 발매되기에 이른다. Zunow 5cm f/1.1은 기본 설 계는당시대구경렌즈의간판과도같았던조나타입을기초로제작되었 으며5군9매의구성에반구형에가까운형태로 게돌출된후옥의모 습 탓에 ‘탁구공’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그러나 사용 및 보관이 용이하지 못했던 이 전기형 렌즈는 2년 후, 1955년 즈노광학공업주식회 사로 사명을 개칭함과 동시에 후옥이 오목렌즈로 변경된, 5군 8매 의 즈노-타입으로 완성된다. 필터구경은 54.5mm로 일반적인 표 준렌즈의 구경이 40mm전후에 불과했던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실 로 거대한 렌즈가 아닐 수 없었다.

이후 고속 렌즈의 등장은 간단없이 계속되어 1956년 한 해에만 NIKKOR-N 5cm F/1.1, Canon 50mm f/1.2, Hexanon 60mm f/1.2 등의 걸출한 고속렌즈들이 등판하기에 이른다. 그리 고 1961년에는 “인간의 눈보다 밝은 렌즈”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건 경이로운 개방 조리개 값의 Canon 50mm f0.95가 발매된 다. 끝없이 계속될 것 같았던 소리 없는 전쟁은 상용렌즈로는 최초 로 비구면렌즈를 사용한 녹티룩스 1세대(1966년)와 1941년 적외 선을 이용한 야간투시경용으로 개발되었던 Zeiss UR-Objectiv 70mm f/1.0을 기반으로 제작된 Zeiss Planar 50mm f/0.7이 1968년 아폴로8호와 함께 달의 뒷면을 촬영하기 위해 지구 궤도 를 벗어나며 막을 내리게 된다. 이 Planar 50mm f/0.7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배리 린든(Barry Lyndon, 1975)이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촛불만을 이용해 촬영할 수 있도록 만든 렌즈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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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now 5cm f/1.1가 발매된지 1년 뒤인1956년은 니콘에게 있 어 매우 고무적인 해였다. 해당년도에 니콘은 Nikkor-N 5cm F/ 1.1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빠른 광각 렌즈였던 W-Nikkor 3.5cm F/1.8를 동시에 발매했기 때문이다. 비록 세계최초라는 타이틀은 놓치고 았지만, Nikkor-N 5cm F/1.1은 광학적 완성도에 있어 Zunow 5cm f/1.1의 그것을 많은 부분에서 상회하고 있었다. 이는 대구경 렌즈의 공식과도 같았던 조나 타입의 구조를 과감히 배제하고 더블 가우스 타입의 대칭형 구조를 선택한 점, 그리고 당시 신소재로 개발된 란타늄을 렌 즈용 유리재에 섞어 굴절률을 비약적으로 높인 것에서 기인한다. 렌즈 제조 에 쓰이는 산화란타늄은 비방사성으로 같은 용도로 사용된 토륨(Th)에 비해 위험도가 매우 낮다. 또한 대물렌즈 전면에 볼록 렌즈를 새로이 추가하는 등의 실험적인 시도 역시 구면 수차와 상면만곡을 적절한 수준으로 감소시 키고 있는 설계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Nikkor-N 5cm F/1.1은 1957년 자국 내 특허에 이어 1958년 미국 특 허를 출원함으로써, 독창적인 새로운 타입의 렌즈임을 인정 받기에 이른 다. 이후 니콘은 Nikkor-N 5cm F/1.1의 설계를 기초로 야간 개방촬영에 서의 성능을 극대화한 대구경 렌즈 개발에 박차를 가해 1977년 전설적인 Noct-Nikkor 58mm F/1.2 렌즈를 탄생시킨다.

여성향의 전기형, 남성향의 후기형

Nikkor-N 5cm F/1.1은 니콘 레인지파인더 카메라의 마지막과 니콘 일안반사식 카메라 시대의 초반에 출시된 렌즈의 특징인 ‘해바라기 타 입’의 초점링 디자인을 처음으로 채택했으며 같은 해 출시된 W-Nikkor 3.5cm F/1.8 역시 동일한 형태의 초점링을 가지고 있다. 초점링 요철의 간격은 전기형이 더욱 조밀한데 비해, 후기형은 간격이 넓고 깊이가 깊어 미끄러짐 없는 조작이 가능해 한결 믿음직스럽다. 전기형에서 여성의 아름다운 곡선의 형태가 느껴진다면, 후기형에서는 남성향의 굵고 강렬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니콘과 콘탁스의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는 렌즈의 체결이 2가지 방식 으로 이루어지는데, 첫 번째는 렌즈가 바디의 헬리코이드에 튀어나온 작은마운팅후 에렌즈의탭이고정되는방식으로,이를내조식마운트 (Internal mount)라고 부른다. Nikkor-S 5cm F/1.4나 Zeiss Sonnar 50mm F/1.5와 같은 소형의 렌즈가 이 방식을 이용하며, 광각렌즈와 같이무거워바디의헬리코이드에무리를줄수있는렌즈는헬리코이드바 깥에 있는 외조식 마운트(External mount)의 베이요넷에 장착된다. 니 콘에서는 내조식 마운트 버전을 주의하여 사용하지 않을 경우 헬리코이 드의정밀도에무리를줄수있다고판단,추후경통부를새로설계한후 기형의 외조식 마운트로 개선한다. Nikkor-N 5cm F/1.1은 내조식, 외 조식 마운트로 각각 835개, 1,547개, 그리고 라이카 스 류 마운트용으 로 211개가 생산되었으며, 모두 광학적으로는 동일한 설계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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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올드아바나, 라아바나비에하에 위치한 혁명박물관은 쿠바의 혁 명가 체 게바라가 생전에 사용했던 쌍안경 등의 여러 유품들을 소장하고 있는데,Nikkor-N5cmF/1.1도그중하나이다.아마도동일렌즈중 가장 유명한 개체일 것으로 생각되는 전기형의 시리얼 No. 120155번이 Nikon S2 B/D(No. 6195473)에 마운트 되어 이곳에 전시되고 있다.

f/1.1에서 새로이 구현되는 시공간의 매력

Nikkor-N 5cm F/1.1의 설계는 가우스 타입의 대칭형 구조를 기본으로하고있다.이로인해지름62mm의대구경렌즈임에도불구하고왜 곡이 적고 개방에서의 중앙부 해상력이 비교적 양호하며 F/1.1이라는 조리개 수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색수차가 적은 강점을 가진다. 그러나 이에 반해 개방값에서 광량부족이 두드러짐과 동시에 플레어와 코마 수 차의 발생으로 주변부의 컨트라스트와 해상력이 떨어지는 태생적 한계 역시지닐수밖에없게된다.특히개방조리개근방에서발생하는코마 수차는 소용돌이 형태의 빛망울을 만들어, 개방에서의 화상이 다소 어지 러운 분위기를 갖는다. 그러나 까다로운 렌즈인 만큼 배경과의 거리나 피사체,빛의양과방향등을잘조절하면6군9매의란탄글래스속에 내재된개성있는결과물을끌어낼수있다.

멀티 롤 렌즈로도 충분한 심도촬영에서의 묘사

수산시장에서 단 몇 롤의 촬영뿐이었지만,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강렬한 체험에 사로잡힌 뒤 한동안 열병을 앓은 나는 결국 오래지 않아 내조식 렌 즈를 구입해버렸다. 결혼식을 앞두고 가까스로 수중에 들어온 Nikkor-N 5cm F/1.1는 함께 신혼여행지였던 그리스로 떠나게 된다. 사실 여행지에 서 굴리기엔 무겁고 부담스러웠기에 출발 직전까지 가방에 넣을지 지를 고민했다. 어쩌면 작고 가벼운데다 멀티코팅까지 갖춘 밀레니엄 Nikkor- S 50mm F/1.4가 여행에는 적절한 선택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F/1.1로 배경을 날려 버리면 그곳이 지중해인지, 을왕리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 다. 고민 끝의 해답은 결국 조임 촬영에서의 성능에서 찾았다. 네이든과의 창덕궁에서 촬영한 필름 컷을 뒤져 라이트박스에 올리고 조리개를 조여 찍 은 풍경사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대구경화에 초점을 맞춘 렌즈라 주변부나 조임에서의 단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Nikkor-N 5cm F/1.1의 묘사 특성 중 재미있는 점은 F5.6 이상으로 조리개를 조여도 컨트라스트가 일정수준 이상 강해지지 않고 암부의 계조가 남는다는 것인데, 이 점이 지중해의 강한 태양이 만드는 암부의 그림자에서도 풍부한 계조로 전체적인 화상을 잡아주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함께 가 져간 Kodak E100VS는 그리스의 강한 빛과 맑은 대기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자칫 심심해 보일 수 있는 렌즈의 컨트라스트를 적절히 보완해주었 다. 따지고 보면 여러 종류의 필름을 촬영하는 렌즈에 따라 궁합에 맞춰 고르던 그때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필름 유저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 때 같진 않겠지만 최근의 코닥 등 필름메이커의 내로라하는 필름들이 재발매 된다는 소식이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노스텔지아를 기록하는 순간

필름을 사용하는 촬영자의 입장에서F/1.1이라는 조리개는 ‘안도감’이라는 단어로 치환할 수 있다. 이는 대부분의 어두운 실내에서도 1/60의 셔 터스피드를 보장해주는 실로 경이로운 수치다. 60여년전 지구 어디에선가 채굴된 광물로 이루어진 대구경의 렌즈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분명 최신 디지털 바디의 높은 유효감도나 손떨림 방지 기능이 장착된 전자기기로부터 얻어지는 그것과 다르다. 아마도 태고의 어둠을 한 톨의 불씨로 극복한 인류의 안도 끝에 내뱉어진 긴 날숨과 닮았을 것이다.

Nikkor-N 5cm F/1.1은 의도한대로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렌즈다. 특히 플레어나 글로우를 확인할 수 없는 필름에서의 촬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연유로 빛이 강한 야외에서는 0.5스탑 정도 언더로 촬영해 물리적인 글로우를 줄이고 보정으로 승부하는 편법을 사용하기 도한다.빛의위치와방향,세기에따라좀처럼감을잡을수없는것이어쩔때는 고삐풀린망아지나진배없다.그럼에도아주가끔,모든조건 이 맞아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이 영롱한 대물렌즈를 통과해 필름면에 명멸할 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노스텔지아를 영원으로 기록해내고 만다. 향수는 과거에 대한 동경이자 그리움으로 남을 뿐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다시 재현될 수 없는 이 노스텔지아를 담아낸다는 표현이 다소 역설적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렌즈가 그려내는 이미지는 시간에 씻기고 걸러진 끝에 남은 아련한 추억과 맞닿는다. 아마도 이것이 삶에 있어 가장 중 요한 순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렌즈를 집어 들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