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각인된 여행의 기억 – 유경희

사람마다 여행의 의미는 다르다. 의미가 다르다 해도 여행이 가지는 비일상적인 일탈은 새로운 활력 이기도 하고 혹은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바라 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내게 있어 여행이 갖는 의미는 색 다르다. 여행의 체험에서 난 많은 것을 얻었고, 또 이 세상을 살아갈 새로운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매우 개인적인 체험 이기는 하지만, 내게 각인된 여행의 기억을  잠시 소개해 볼까 한다.

여행1.

무더운 8월의 여름. 1980년대의 기억이다. 난생 처음 탄 비행기를 탔다. 여행지는 일본, 15살 소년의  첫번째 여행 이었고 또한 각인된 기억의 시작 이기도 하다. 15살 소년의 마음은 고동치고 있었다.  해외 여행이라는 설레임도 그러하지만 새로운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양감은 이내 상실감으로 변질 되었다. 누구보다 내 정체성에 자신감에 차 있던 소년에게 일본이라는 공간이 너무나 생경 스러웠다. 자유롭고 활기찬 형형색색의 도심이 오히려 혼란 스러웠다. 성적 표현의 관대함도 그러했지만 막 개장한 도쿄 디즈니랜드 그리고  쯔쿠바 세계박람회에서 느낀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이 혼란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그냥 사소한 감정에 불과 했다.  문화적 충격 이야말로 가장 큰 혼란 이었다. 쿄토 그리고 나라에서 본 전통 건축 양식은 제한된 경험 밖에 없었던 소년에게 너무나 불가사의 하고도 기묘한 충격이었다. 나의 모든 지식 체계가 부정 당 하는 듯 했다.열 아홉살을 맞이 할 때까지 그러한 혼란 했던 기억의 편린 만을 쫓아 해맨 시기 였다.

여행2

열아홉살을 어렵게 넘긴 나에게 젊음은 향휴 할수 있는 사치가 아닌 고통 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돌이켜 보면 한마디로 표현 할 수 있다. 이 세상이 오직 뿌연 매연으로 가득찬 회색 지대 이었다고.. 그런 어떤 추웠던 1월. 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낯선 환경이 마음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거라는 낙천적인 환상, 그리고 비일상적인 일탈이 필요 했는지도.. 그래서 택한 곳이 일본 이었다. 15살 그 혼란스럽고 잔인했던 기억의 편린을 다시 한번 되 새겨 보고 싶은 충동, 그래서 난 15살의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갔다. 다소 어른 스러워진 내게 있어 일본은 어떤 얼굴로 다가 올까 라는 설레임, 무엇보다 그 혼란의 정체가 진실 이었는지 확인 하고 싶었다. 동경역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쿄토로..그렇지만 이 비일상적인 일탈은 더욱더 혼란스러운 기억만을 각인 시키고 끝을 맺는다. 쿄토에서 만난 반가사유상, 길을 헤맨 탓에 박물관 폐장 30분전에 겨우 입장. 숨을 고르기도 전에  박물관 한 가운데 홀로 놓여 있는 목조 불상과 마주 했다. 무지의 상태 에서의 조우, 그때의 팽팽한 긴장감은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까지도.. 난 다시 한번 압도 당하고 말았다. 시공간을 초월한 어떤 절대적이고 아름다운 존재감, 나는 그때 무너져버린 감정의 변화가 실로 절대적 미에 대한 각성 이었다는 것을 훨씬 나중에서야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날 괴롭혔던 혼란의 정체가 어떤 건지 확실히 알수 없었다. 또 그렇게 두번째 여행은 선명하지 않은 막연한 감정만을 각인시킨 체  끝나 버렸다.

마지막 여행

채워지지 않는 갈증, 몽롱한 허탈감..난 인생 일대의 일탈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 버린체,  스물한살의 어느 가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각인된 기억들이 새겨진 일본이라는 공간이 나를 자유롭게 해 주리라는 어설픈 확신을 안은체..그 곳만이 무언가를 채워 주리라는 막연한 동경. 그렇게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그런 비 일상적인 일탈이 그리 오래 갈 리가 없었다. 늘 그렇듯이 더 큰 허무를 감내해야 했다. 일상에서의 도피는 결국 허무함 그리고 고통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지루함 이라는 고통을 느껴 본 사람은 알 터이다.그런 하루하루 속에서 난 어떤 소녀를 알게 되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나에게 한줄기 빛 이었다.어느날 그녀는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정말 하고 싶은게 있어요?” 라고.. 그리고 천천히 자기 오빠 이야기를 이어 갔다.

“우리 오빠는 어릴적 부터 피아노 치는걸 좋아 했어요. 소질도 있었고 음대에 갈 정도로.. 그렇지만 그 꿈을 접고 의대에 진학 했어요” 라고..

“그러던 어느 햇살이 아름다웠던 5월 이었어요. 학교에 간다던  오빠는 그 날 이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이야기의 결말을 재촉 하였다.  “그래서..어떻게 되었는데?”

그녀는 사랑스런 눈빛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무더웠던 8월..한 작은 카페 였어요. 오빠를 다시 만났어요. 어둡게 조명이 내린 홀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지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오빠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5월의 아름답고 눈부시던 그 햇살이 나를 여기에 이르게 했다고..”

긴 여운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난 그때 처음 느꼈다. 감동이라 부르기기가 경박할 지경의 긴 여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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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전히 그 어떤 혼란과 그리고 긴 여운을 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오늘도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