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 끈질긴 기억

살아있다면 누구에게나 가족이 있다. 가족은 우리의 삶을 이어주는 질긴 끈이다.

나는 어릴 적 고향의 조그만 항구에서 매일 새벽마다 죽음만큼 푸르렀던 바다로 일을 나가야 했던 아버지들을 바라보며 자랐다. 아버지의 인생이란 삶을 이어가야 하는 힘보다 더 가혹한 부양의 몫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되었다. 나에게 가족은 그렇게 거친 삶을 버텨내며 살아내야 하는 어떤 고난의 덩어리였으며, 일탈할 수 없는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시간은 모든 것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가족은 그 시간의 망각 속에서도 또 다른 진실을 잉태하고 있다. 아버지의 거친 손은 이제는 잡아도 실체가 없는 나약함으로 변했고, 어머니의 고운 손은 검버섯이 피어난 까칠한 세월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웃어줄 수 있었던 어머니 대신 딸은 어머니의 시간을 이어받았으며,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받던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되어 다시 가족의 중심이 되어간다.

인생이라는 그 질긴 시간 속에서의 가족은 우리가 아는 모든 단어를 동원해도 표현하지 못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창출하고 존재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태어나고, 관계하고, 감동받고, 기뻐하며 때로는 분노하고, 갈등하고, 노쇠해져 가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나는 과연 어떤 존재였을지 궁금해졌다.

유년의 아련한 기억을 시작으로 고문과도 같았던 아픈 이별까지 겪어내며 느낀 나의 가족에 대한 단편들은 결코 놓을 수 없었던 작은 끈으로 귀결되고 만다. 그것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질긴 추억의 끈이다. 가족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작은 끈 속에서 이제껏 버티고 살아올 수 있었던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은 아마도 산티아고가 사막의 여인을 만난 설렘만큼이나 즐거운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

 

Trimming Edge

어릴 적 조그만 어촌마을 외곽의 낡은 폐차장 안에서 움직이지도 않는 고물차의 핸들을 돌리며 세계여행을 하는 꿈을 꾸었다. 그 조그맣고 폐쇄된 공간 속에서 체득된 내면적 아우라(Aura)는 나에게 있어 풍경이란 것들의 기본적인 원본이 되었다.

이제 난 나이가 들어 자아실현이라는 구체적이면서도 다소 우스운 목표 속에 떠나는 여행을 하게 되었지만 가끔 그 통로에서 어릴 적 상상했던 낯선 풍경들을 마주 대하곤 한다. 그 길은 어릴 적 나에게로 돌아가는 회귀본능을 강렬하게 자극시킨다.

마치 연금술사에 등장하는 양치기 산티아고가 그의 양들을 데리고 삶의 가치를 스스로 깨달으며 떠나는 자아실현의 고단한 여정처럼, 내가 만난 수많은 길들도 역시 나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또 어떻게 가야할지를 알려주는 수많은 지표들을 감추고 있다. 나는 삭막한 사막과 시커먼 고담의 골목길을 거닐며 곳곳에 숨겨져 있는 그 표지들을 발견하고 내 삶을 돌아보는 그런 여행을 즐긴다.

나에게 낯선 풍경이란 어릴 적 세계여행을 상상하고 꿈꾸던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잠시의 여유인 셈이다.

문(門) 그리고 추억

‘문은 그랬다. 나에겐 찐한 인생의 나들목처럼’

문(door)은 사전적 의미로 한 장소의 경계나 건축물의 입구 또는 사람이 드나드는 곳에 개폐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구조물을 뜻한다. 내가 나고 자란 골짜기 시골의 촌구석 마을엔 바람을 막는 방문은 있었지만 부지의 경계를 나타내는 쓸만한 대문(gate)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히 나는 그럴듯한 대문을 보고 자라지 못했고 늘 남의 집 안방을 제집처럼 여기고 들여다보는 것이 일상화되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가족 같았다. 그런 조그만 마을에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고 초가집이 헐리더니 그럴싸한 대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즈음이 아마도 내게 문이란 실체의 경계와 추억의 의미가 강하게 생겨난 때가 아닌가 싶다. 어릴 적 기억이 수 도 없이 잉태되어질 그 무렵 나는 참 많은 문을 넘나 들었었다. 어린 시절 학교 앞길에 있는 만물상회는 파란 나무문으로 이루어진 작은 유리창 문이었다. 문을 열면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딸랑거리는 작은 방울소리는 꼬마 손님이 왔음을 주인아주머니에게 알려주었고 우리는 그 가게에서 라면 땅과 도루묵 삶은 알 등을 먹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했다.

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친구네 집 대문은 내 일상의 통로였다. 엽기적인 상상을 하며 구시렁대던 여드름투성이의 아이들은 긴 여름 내내 그 작은 친구 집 방구석에 앉아 서로 뭔가를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낯 뜨거운 잡지라도 볼라치면 나무가 틀어져 이가 맞지 않는 친구 녀석 집 노란 나무 대문을 모두가 붙잡고 끙끙거리면서 잠가놔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대학시절, 거리에서 집회를 하다 전경들에게 쫓겨 들어간 집에서 연탄을 쌓아두는 작은 문 뒤에 숨은 적이 있었는데. 그 주홍빛 선명한 대문을 아직도 난 잊을 수가 없다. 아주머니가 바가지로 퍼주던 시원한 냉수까지도.

이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대문을 헐고 아파트로 급속한 이주를 시작하고 있다. 똑같은 집들…. 똑같은 문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기억도 똑같아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 정도다. 물론 괜한 걱정이겠지만… 사람들이 나고 자라면서 수없이 드나들던 곳. 그것은 바로 문턱이다. 그러한 문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일상이며 추억이다.

나는 아직 이 도시에 남아있는 내 추억의 고리가 바로 문이라는 경계로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내가 보고 자란 여러 가지 색깔의 문들을 보면서 그때에 알맞게 들려오던 소리들과 사람들의 웃음 그리고 여유… 뭐, 그런 것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도심 재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예전의 낡은 대문들은 사라지고 있다. 가난하고 어렵지만 그래도 작은 내 집을 가지고 있던 달동네 사람들은 도시의 깊은 지하로 숨어들었고 작은 웃음소리와 대문 안쪽으로 들리던 AM 주파수가 맞춰진 할아버지의 라디오 소리도 멈추었다.

난 오늘도 문을 바라보고 한참을 서있다.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나무문.. 철문… 싸리문까지… 나의 시신경이 잡아내는 작은 문의 색깔들이 빠르게 추억으로 전환되어 파도처럼 밀려온다.. 마치 나보다 먼저 가신 어머니와 할머니의 자글거리는 손이 살아나 꼭 잠가 놓은 듯한 추억의 나만의 대문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들.. 그렇게 남의 집 대문 앞에서 오랫동안 색을 보고 웃으면서 있는데.. 지나가는 동네 꼬마들이 그런 나를 보고는 한 마디씩 한다.

“야~야… 저 아저씨 약간 돌았나 봐…”

그래, 인생의 나들목을 바라보며 그렇게 서 있는 나는 내가 발견한 스스로의 문을 통해 지금 어디론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의 색깔이 있는 추억의 문으로 말이다.